(첫 번째 글을 적고 나서 벌써 4달이 지났네요. 혹시 읽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미안합니다, 그 동안 좀 바빴어요..)

운전을 오래 한 덕분에 크리스마스 날 밤에는 Airbnb 숙소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깊은 잠에 들었다. 저녁 열한 시에 잠에 들어 다음 날 아침 여덟 시쯤 서늘하고 낯선 공기에 눈을 뜨면서, 올해 들어 이렇게 상쾌하게 일어난 적이 있었나 싶었다. 2015년은 마음가짐이 많이 복잡했던 해였다. 익숙하고 따뜻한 내 집보다 타지의 춥고 좁은 방 하나가 더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여행 이튿날인 오늘은 예전 추억을 더듬어 가는 날로 정했다. 아마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 귀찮아서 그랬으리라. 6년 전 몬트리올로 당일치기 여행을 왔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Old Montreal (Vieux-Montréal) 에서 보냈었다.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적당한 곳에 내려서 Old Montreal의 중심가로 걸어왔다. 오늘은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면서 토요일이라 여전히 성탄 연휴다.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어제 밤보다는 조금 많아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식당에는 Fermé (Closed) 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한숨을 푹 쉬며 근처 맥도날드에 들어가 끼니를 떼우고 주변에 스타벅스를 찾아가 혈관에 카페인을 채우고는 정신을 차린다.

8305_10154390196897788_2073892772135227572_n

@ 474 Rue McGill, Montréal, QC, Canada

SNS에 글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위의 사진과 함께. 청승맞게 혼자 여행을 왔을지언정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아야 하니까.. (“American trash”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있자니 창 밖에 햇살이 조금 든다. 다시 짐을 챙기고 대성당 쪽으로 발을 옮겼다.

P1100289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 도시에 오는 모든 여행객들이 첫 번째로 들르는 곳이다. 아늑한 스타벅스를 찾으려고 너무 멀리 왔는지 대성당까지 꽤 걸었다. 가는 길에 적적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이 보이는데 잘 사진으로 담기지가 않는다. 사진은 2-3년 전부터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는 취미생활인데 올해에는 참 안 된다. 기본기가 여전히 부족하고 구성도 더 많이 공부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의욕이 없어진 것이 문제.. 그래서 자연스레 관찰력도 떨어진 듯하다. 여행을 떠나오면 자연스럽게 영감(?)이 떠오르진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다.

P1100308

대성당의 위용은 여전하다. 최근에 장만한 환산 14mm 광각 렌즈로 겨우 한 프레임에 담았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난 번에 이 성당을 보러 왔을 때 생각을 하며 잠깐 몽상에 잠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늘 오후 5시에 미사가 있다고 쓰여 있다. 그나마 프랑스어로 요일 정도는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그냥 입장료 받는 관광지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매일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 개인 정보의 종교란에 ‘천주교’라고 적다가 ‘무교’로 쓰게 된지 좀 되었는데, 염치 불구하고 미사에 참석하기로 한다. 아침에 일찍 출발했더니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Old Montreal을 천천히 다시 돌아보고 St. Lawrence 강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P1100313

P1100318

P1100321

P1100322

P1100332

@ Marché Bonsecours

P1100362

P1100374

한참 강 주위를 걷다가,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질 무렵 St. Denis 거리를 따라 강 반대편으로 걸어 올라오니 UQÀM 대학퀘벡주 공립 도서관이 나온다. 이 지역은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점이 많고 활기찬 분위기다. 근처에 문을 연 바에 들어가 맥주 한 잔과 닭고기 꼬치구이 하나를 시켜 먹고 있자니 벌써 미사가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다. 다시 온 길을 부랴부랴 뛰어가서 오분쯤 늦게 성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문을 지키는 분이 들여보내 주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P1100385

@ Basilique Notre-Dame de Montréal

다행히 아직 입당 성가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급하게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고 보니 눈 앞에 펼쳐진 금색과 파란색의 조화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신부님이 먼저 간단한 영어 인사로 세계 각지에서 대성당을 찾아온 나 같은 타지인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신다. 아마 성탄절이었던 어제는 무척 붐볐을 터인데 오늘은 차분하고 따뜻하다.

난생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미사를 본다. 주위로 고개를 돌려 보니 대충 누가 나처럼 외지에서 왔는지 눈에 보인다. 내 바로 뒤에서는 미국인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자매가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앞에 왼쪽에는 중국인 4인 가족이 나처럼 멍하니 성당을 둘러보고 있다. 영성체 의식을 할때 잠시 일어났다 앉으니 스페인어로 속삭이는 사람들도 있다. 무척이나 생경한 풍경인데도 낯설지가 않고 마치 중학생 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성당에 와서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 하지만 어떤 의식을 하고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유대감, 친밀함은 종교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P1100399

P1100411

P1100468

미사를 끝마치고 나와 대성당 옆의 찻길에 한참동안 서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수없이 찾을 수 있는, 흔하고 뻔한 노트르담 성당의 야경 사진이 될 테지만, 그냥 내 기억 속에 더 깊이 남겨두고 싶어서 계속 찍는다. 귓바퀴를 때리는 바람이 무척 차갑다.

왜인지 허전한 기분이 들어 성당 근처의 허름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캐모밀 차를 한 잔 마시는데, 그마저도 휴일이라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서성거리며 걷다 보니 차이나타운 근처에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밥을 아직 안 먹었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근처에 맛있는 국수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여행을 했었더라..

P1100482

@ Nouilles de Lan Zhou, 1006 Boul St-Laurent, Montréal, QC, Canada

이 집의 “beef noodle soup”는 제법 괜찮았다. 춥고 배고프고 하루 종일 걸었으니 무얼 먹었어도 맛있었겠지만..

식당에 자리가 비좁아 아저씨 한 분과 합석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게 됐다. 중국어는 못 하는 것 같은데 아시아계 미국인이고 시카고에서 왔다고 한다. 이 분은 어떤 사연으로 연말 연휴에 이 추운 곳을 혼자 여행하고 있는지.. 자세히 묻지는 않고 여행 이야기, 사진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아저씨는 국물이 너무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한다. 주방에 부탁해서 서너번을 국물만 더 받더니 국수 면은 절반 가까이 남겼다. 각자 계산서를 받고 나서 아저씨와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밤에 먹을 간식을 조금 샀다. 지하철에서 내려 눈을 맞으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과 오늘이 아니었던 날들의 기억이 머리속을 가득 채운다. 오늘 밤에는 어제처럼 금방 잠들지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속)


2 Responses to “몬트리올 여행 2부”  

  1. 1 Traveling man

    Your photos are so good.

    – June

  2. 2 Taedong Yun

    Thank you June 🙂 I’m glad you liked it.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