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용서를 하는 까닭은 우선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자학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화를 내면 상대가 질려서 떠나 버릴까 봐 서둘러 용서를 해 버린다. 그리고는 상대가 원하는 쪽으로 자신을 맞춰 나가며 그에게 매달린다. 한편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분노의 감정쯤은 가뿐히 다스린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상대보다 도덕적으로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둘러 상대를 용서한다. 마치 현자인 척 행동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강요로 마지못해 용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짓 용서를 할 경우 겉으로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지 몰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분노로 인해 상대를 괴롭히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를 파괴하는 병적인 관계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분노는 결국 자신에게로 방향을 틀어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용서를 하자니 아직 화가 덜 풀렸고, 그렇다고 화를 계속 내자니 관계가 완전히 끝나 버릴까 봐 두려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흔히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용서는 서로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거의 분노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때문에 용서란 떠나보냄이다. 과거에 상대방이 잘못했던 것을 이해하고 그 기억을 떠나보내는 작업이며, 뉘우치고 있는 그를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용서를 하고 나면 더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김혜남,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