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인생

2005.01.07 15:26

윤태동 조회 수:5986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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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 세 번에도 끄떡없는 사람  
  
“지금 사는 인생은 덤입니다.”
성남 중부경찰서 경무과장 윤효옥(59) 경정은 인터뷰 초반에 무게 있는 멘트로 말문을 열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대목에서 과거에 시련이나 우여곡절 등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던 행원 시험에 낙방하자마자 그는 스무 살에 입대하고 스물두 살에 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남보다 일찍 공직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다음해인 69년 경찰 공무원 순경으로 이직한 후 35년째 외길 경찰 생활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을 주로 형사로 근무하며 크나큰 사건을 해결해 뉴스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그. 경기도 안성에서 근무를 하던 1995년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대장암 3기, 수술을 해도 5년 동안 살 수 있는 확률이 20% 미만이라는 절망적인 소견이 내려졌다.

물론 가족들한테만 얘기했지만, 형사의 직감으로 그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윤 경정은 보통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가게 돼 있다.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가족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최소한 가족들에게 이별을 할 시간이라도 주어지지 않았는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고 한다.

이러한 낙천적인 성격 때문일까? 수술 후 경과가 좋았다.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향후 1년 간 항암치료를 매달 5일씩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권유를 뿌리치고 그는 그 병원에서 차트를 받아다 근무지인 안성 성모병원에 맡기고 가족과 떨어진 채 통원치료를 받았다. 치료에만 전념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는 일을 손에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7개월 후 그는 안성에서 발생한 강간·살인 및 사체 유기사건을 발생 8개월만에 해결했다. 당시 27세 젊은이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인데 처음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단다. 윤 경정은 그 젊은이를 교화시키기 위해 부단 애를 썼다.

대장암 수술 때문에 흉측한 흉터가 남은 자신의 배를 들춰 보이며 “나는 암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젊은 사람이 포기해선 안 된다”고 격려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젊은이는 모든 범행을 실토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결과 사형까지도 가능했지만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감해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윤 경정은 당시 젊은이로부터 받은 편지를 꺼내 보여줬다.

...과장님께서 수술하신 곳을 보여 주시며, 이런 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희망을 갖고 살아라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과장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또한 많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선고에서 무기형을 받았습니다. 생각하면 정말 극형에 처해야 할 죄인인데 이렇게 선처를 베풀어주시어 윤 과장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윤 수사과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슴이 너무 뭉클한 나머지 그 편지를 몇 번이나 읽고 나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 후 윤 경정에게는 두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2년 큰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난 후 갑작스럽게 위암이 찾아와 위장의 4분의 3을 잘라내야 했고 지난해 4월에는 전립선암이 발병해 또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때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암을 이겨내고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길 정도로 건강하다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암 수술을 세 번이나 한 것 같지 않게 너무 해맑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그가 했던 말을 되뇌어 보았다.

“왜 하필 나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한테 이런 병이…”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절대 질병을 극복할 수 없다고 그는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그리고는 “덤으로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병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못 다한 봉사를 차남(경찰간부로 근무 중)이 대를 이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뜻을 비쳤다.

평소에 수많은 범죄인을 대하면서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암 수술 부위를 보여주면서까지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윤 경정.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다’라는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배어있는 우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오마이뉴스   2005-01-07 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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