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

25May15

이 TV드라마가 방영되었던 것이 2006년이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아마도 네 번째나 다섯 번째로, 다시 꺼내어 본다.

이렇게 지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들춰보게 되는 이유는 늘 비슷하다. 잠을 이루기 힘든 새벽, 불현듯 머리속에서 한 장씩 넘어가기 시작하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모른척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극 중 남자 주인공 동진의 나이는 32세다. 스물한살 갓 입대한 이등병의 신분으로 이 어른들의 이야기를 보며 울고 웃으며 인생을 조금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서른이 되어 다시 같은 장면을 보며 그 때의 나와 감정을 공유한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첫 눈에 반한 상대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함께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을 잃고, 헤어져서 3년을 보내고, 고통과 노력의 시간 끝에 다시 나른하지만 따뜻한 일상을 얻어낸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여전히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그 때 적었던 글을 읽으며 강해지고 싶어하는 나를 본다. 앞으로 다가올 슬픔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단련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던 지난 몇 년간의 내가 떠올라 미안하고 부끄럽다.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으면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걸까.

(Published 2006/05/29.)

인간에게 무척 커다란, 일상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슬픔이나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불행에 대한 기억이 마음속에 너무 깊히 박혀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다. 이 때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무기는 망각과 체념이다. 시간이 인간에게 뜻하지 않은 행복과 불행을 가져다 주는 대가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과 맞물리면서 그를 살게 한다. 인간이 나이가 들어 가면서 “강해진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비굴한 방어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커다란 가시가 수없이 박혀 있는 중에서도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서로 유머를 나누고 시시한 일상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 추구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서는 때때로 찾아오는 행복의 시간에서, 극중 은호의 말처럼 “염치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 끝에는, 결국 언제나처럼, 지금 이 시간을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의 나레이션이 이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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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은 진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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