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27Mar11

갑자기 생각이 나서 훈련소 때 썼던 일기들을 읽어보았다.

(2006. 2. 22. 생일. 논산)

생일이다. 앞으로 생일 하나만 더 지나면… 전역할 수 있다. 생일이라고 괜히 우울해하지 않으련다. 생각을 버리고 몸만 움직이자. 그러면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나의 침실 여행’을 생각해 보자. 주위의 사물·사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총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총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총검술 자세를 하나하나 따라하는데 구분동작으로 멈춰있을 때마다 팔과 손목이 끊어지는 듯 했다. 오늘은 그래서 다들 피곤해한다. 다행히(정말 다행히) 오늘은 불침번이 없더라. 그리고 저녁먹고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다.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하하.

아까 분대장에게 오늘 전화 한 통 시켜달라고 얘기는 해 놨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못 했다) 까먹었으려나… 뭐 아무려면 어떠냐. 앞으로 계속 오게 될 생일이니까. 오늘 하루 아무려면 어떠냐. 쓸데없는 우울함은 버리려 노력중이다. 아까 저녁 땐 사실 좀 우울했다. 생일에 170개 그릇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여기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손과 발의 살들이 점점 굳어지고 근육이 점점 단단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훈련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과거의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러리라 믿는다. 훈련병, 이병, 일병을 거치는 것도 분명 모두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내무실에 있는 책 한 권을 보았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그것을 읽어보려 한다. 아는 선배의 조언을 되새기고 있다. 군대에 적응하면서도 ‘나’의 본분과 본질을 잊지 않는 것.

(2006. 4. 2. 오후 7시 23분. 카투사 훈련소)

김형중의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카이스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의 설레임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그 때와 군대 생활을 시작하는 지금의 기분이 왜 이리 다른 걸까. 아니 다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즐겨보자.

너무 놀랐다. 나 정말 강했었구나. 그때는.

생각해 보면 훈련소에 있을 때와 이등병 때 만큼 내 자신에 대해서 만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괜찮은 인간이었다. 논산에서 중대장의 ‘정신교육’ 시간에 보급으로 받은 노트에 썼던 일기들이 지금 내 머리속에 있는 어떤 생각보다 현명하다. 카투사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시절 내 체력훈련 점수는 당시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컸던 미군들보다 훨씬 좋았다.

어이가 없다. 어쩌다 이렇게 약해졌을까.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부러워했을거다. 훈련병이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유롭고, 원하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방학마다 세계 여러 곳으로 학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물론 한 가지 너무 커다랗게 비어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내가 너무 부럽다. 나 자신의 밝고 강함이 너무 부럽다. 이제는 그 비어있는 부분 때문에 그 때의 나를 다시는 찾을 수는 없게 된걸까.

아닐거라고 생각하자. 그 때의 밝음을 잘 생각해 보면 분명 답이 있을거다.


3 Responses to “역주행”  

  1. 1 김수경

    대학때 내 자신을 만들었던 내 꿈, 내 사람들, 내 가족, 내 열정.. 이런 부분 부분의 작은 조각들이, 나이가 들아가며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서 이런 것 들로 인해 절대적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인간은 원래 나약해서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이끌어져야만 버틸 수 있는걸까? 눈앞의 다음단계의 목표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가며, 혹독하게 스스로를 앞으로 내몰려고 해도, 인생이란 여지없이 불가항력적인 실패도 주는구나. 그런 굴곡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결론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었어. 내 주위에 사람들, 마음들이 내가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게 하고, 다시 시작하게 도와준다. 인생 오래 살아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좋은 일보다 힘든일이 더 많을건 예상할 수 있을거 같아. 나도 많은 빈자리 들이 생기겠지.. 하지만, 나는 같이 존재하는 사람이란 종으로 태어났기에, 다른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을 딛고 다시 일어나리라 믿는다. 너도 그럴거야. 내가 기억하는 카투사 윤태동은 밝고 야심찬 친구였고, 지금 내 절친 윤태동은 쓰지만 깊은 인생의 행복을 아는 성숙한 친구다. 🙂 Will be always here for my brother.

  2. 2 Taedong Yun

    😀 니가 여기 써 준 글들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

    너무 고맙고, 여름에 뉴욕에서 볼 때는 둘 다 지금보다는 더 정돈된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3. 3 June

    I pursue happiness at the cost of my own sanity while the name of the game is suffering.
    There is no point I suppo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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