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나 사진으로 기록해두지 않은 시간들이 조금씩 의식에서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두렵다. 마지막으로 일기를 써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여행을 떠난 일 만큼은 기록으로 남겨 두려고 한다. 변변찮은 글을 쓰고 감동 없는 사진을 찍는 것이 싫다고 해서 아까운 기억들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박사과정 2년차였던 2009년 여름, 처음으로 미국 밖에서 하는 학회에 참석했다. 캐나다 땅을 밟아 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온타리오 주와 퀘벡 주의 경계에 있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Ottawa)에 머물면서, 버스로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퀘벡 주의 도시 몬트리올(Montréal)을 처음 방문했었다. 아침에 떠나 저녁에 돌아가는 일정이라 관광할 시간이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짧은 시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도시였다.

그로부터 6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직장인으로 다시 몬트리올을 방문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 곳에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경비 절약의 일환으로 모든 직원에게 성탄절부터 새해 첫 날까지 휴가를 쓰도록 강제하였는데, 아까운 휴가를 집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어디든 떠나야 겠다는 심정으로 고민한 끝에 이 도시를 선택한 것 뿐이었다.

마침 미국 달러가 강세인 때라 하룻밤에 $15 짜리 공짜나 다름없는 방을 5박 6일 예약해 놓고, 2015년 성탄절 당일에 혼자 다섯 시간을 조금 넘게 운전해서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직접 운전을 해서 국경을 넘어 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비행기로 캐나다에 입국할 때보다 절차가 너무 허술한 탓에 놀랐다. 자동차 검사는 커녕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내듯 잠깐 창문을 열고 여권을 건네준 것이 전부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성탄절 당일이었으니 근무하는 직원도 의욕이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국경을 통과해서 퀘벡 주에 들어섬과 동시에 모든 표지판이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바뀌고 거리 단위는 마일(mile)에서 킬로미터(km)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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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아침에 출발했지만 몬트리올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오니 벌써 저녁 다섯 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이미 밖은 깜깜하고, 무작정 나오기는 했는데 주변에 문을 연 가게가 아무것도 없었다. 성탄절 당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이십 분쯤 걸어 표(weekend pass)를 끊고 노선도를 보니 맥길 대학(McGill University) 역이 보인다. 대학 근처에는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연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가기로 한다.

대학가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햄버거 가게의 직원은 의외로 유창한 영어를 했다. 맥길 대학은 공식적으로 영어를 쓰는 학교라고 들었는데 그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첫 인상은 그 도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결정한다. 6년 전 몬트리올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성탄절에 일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이 도시의 두 번째 인상은 한결 편안했다.

성탄절 날 북미에 있는 도시를 혼자 걸어 보면, 좀비 영화에나 나오는 ‘인간이 모두 사라진 도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어둠과 추위에 떨면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더 외로운 분위기를 주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대학의 캠퍼스를 걷고 있자니 불현듯 내가 아직 젋다는 것을 느꼈다. 속옷 바람으로 난방이 잘 되는 집에서 큰 화면으로 가족 영화나 보면서 오늘을 보냈을 수도 있었는데, 굳이 추운 북쪽으로 달려와 청승을 떨며 걷고 있는 이 행동을 표현하기에 ‘젋다’라는 말만큼 적절한 것은 없을 테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느낌 하나만으로도 왕복 10시간의 여정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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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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