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이후로 이렇게 올림픽을 열심히 챙겨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동계 올림픽을. 타지에서 보는 첫 번째 올림픽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퀄을 끝낸 다음 학기라 마음이 많이 풀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난 학기에 내 방에 새로 입주한 32인치 FULL-HD TV의 위풍당당함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미친” 올림픽이 아닐 수 없다. 충격적인 이승훈의 은메달로 시작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의 결과는 상상치도 못한 즐거움을 주었고, 수학과 개강파티 겸 내 생일 파티가 있었던 지난 주말에는 Team America 의 영웅 아폴로 오노 덕분에 아주 흥분되고 즐거운 밤을 보냈다. (나란히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 진출한 캐나다 선수 형제들의 부족한 형제애가 아주 실망스럽기는 했다. 한 명만 희생했으면 너희가 동메달을 가져갈 수 있었을텐데.) 오늘 오후 두 시(미국 동부시간), 내가 Kostant’s partition function 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가야만 했을 때에도 스피드 스케이팅의 영웅 이승훈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남자 10000m 금메달을 가져갔다.

오늘은 WSJ에서 이야기하듯 ‘김연아의 밤’. 지금도 NBC 뉴스에서 “Coming up Yu-na Kim” 이라는 자막을 5분에 한 번씩 내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WSJ의 2월 23일짜 기사 “On Tuesday in Vancouver, It’s Kim Yu-na’s Night” 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Ms. Kim’s success has forced her into the crucible of national heroes in South Korea—a country where celebrity mixes with a combination of ardent patriotism and insecurity about the country’s reputation. Her popularity with Koreans is elevated by her beauty, her humility in public and an impression that figure skating has long been dominated by athletes from bigger, wealthier countries. Perhaps only Canada’s hockey teams could appreciate the pressure on Ms. Kim to win.

“국민들의 유명인사에 대한 인식에 항상 격렬한 애국심과 국가의 명성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섞여있는 나라.”

(참고로 김연아의 부담감이 캐나다 아이스 하키 팀에 비유된 이유는, 하키에 대한 열정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캐나다가 미국 팀에 패배해서 다음 독일과의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 탈락하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다.)

미국인 기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꼬집어 내는 것이 신기하면서 부끄럽지만 뭐 할 수 없다. 이런 면이 올림픽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니까. 다만 기대한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맥주 한 병 마실지언정, 선동적인 인터넷 뉴스 기사에 댓글 하나 추가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어린 체육 선수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결과를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어쩌면 지금처럼 올림픽 보느라 공부 안 하고 멍하니 있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One Response to “2010 벤쿠버 올림픽에 대한 잡담”  

  1. 1 minji

    태동오빠 안녕하세요! 페이스북 통해서 놀러왔다가 이 글은 너무 공감가서 꼬리 남기고 갑니다 😀 😀 😀 WSJ에서 저런 재밌는 표현을 썼었군요! +.늦었지만 퀄 잘 끝나신거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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