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02Mar08

10년 전쯤 뉴질랜드에 있을 때 해변에서 수영을 참 많이 했었다.

내가 있었던 곳의 해변은 광고 카피에서나 나오는 초록빛 투명한 바다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서해 바다처럼 탁한 색깔의 바다였다.

이런 곳에서의 바다 수영은 아무리 많이 해도 무섭다.

배가 들어오는 선착장을 따라 조금씩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면 조금씩 물이 깊어지면서 색깔이 짙어진다. 그렇게 선착장 끝까지 백 미터쯤 걸어가서 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데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기분 나쁘게 몸을 휘감는 시커먼 해초 줄기들의 오싹한 촉감이나 선착장 아래 검게 이끼 낀 쇳덩어리들이 주는 음습한 분위기보다 역시 가장 큰 두려움은 바닷물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몸조차 보이지 않는 탁한 바닷물 속에서,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든 것을 내 상상에 맡기게 되면 그 두려움은 한계도 없이 계속 자란다. 그런 상황에서는 수영 경력 오년에 백 미터 수영쯤은 일도 아니라고 큰소리치던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손과 발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급하게 물 속을 휘젓게 된다.

하지만 그 때, 잠시 고개를 들어 해변가를 바라본다.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상기하고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나면 그 혼탁한 바닷물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처음 몇 분을 버티면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성과가 보인다.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뒤돌아 보면 어느새 내 출발 지점이 저 멀리에 있는 것이 보이면서 내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그리고 나면 이제 내 세상이다. 수영장보다 훨씬 잘 뜨는 바닷물 위에 누워도 보고 물 속에서 한 바퀴 돌아도 보고 가끔씩 보이는 작은 물고기나 새우하고 인사도 한다. 그렇게 바다를 즐기다 보면 마지막에는 아쉬울 정도로 금방 해변에 도착한다.

이제 간단히 머리를 털고 걸어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여유있게 한 마디 던질 수 있다.

” 생각보다 너무 쉽네. 다음번엔 더 멀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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