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주일 전, 12월 17일 아침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공항 셔틀을 타고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순간 터미널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지금까지 열 번 가까이 드나든 공항이었음에도 처음 보는 빨강, 초록의 장식 때문에 항공사 부스로 가는 길을 기억해내는 데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그 날 짐을 부칠 때 만난 항공사 직원서부터, 잠시 시간을 때우려 들어간 서점에 있던 젊은 여자, 공항에서 보안 검색을 하는 사람, 내가 탄 3대의 비행기에 있던 모든 기장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나에게 던졌던 말은 “merry christmas”, “happy holiday”.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사람들에게 ‘빅딜’ 임은 틀림이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특정한 날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도 전에는 남들처럼, 아니 어쩌면 남들보다 더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부터 컴퓨터에 만들어 놓은 ‘Christmas Songs’ 라는 재생 목록을 계절에 관계 없이 듣기도 했고, 12월이 되면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설레었었으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 되면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누군가를 불러내어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의 거리에 나가 있었다.

힘들었던 지난 겨울에 혜화동 대학로를 걸으면서, 어쩌면 다시는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보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전 코플리 스퀘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마음이 울적해져서 귀마개를 끼고 공부를 해야 했다. 이렇게 매번 겨울이 올 때마다 슬퍼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어찌 이리도 단순하고 경박스러운지, 12월 24일이 되니 또 마음이 요동친다. 지난 연말에 나에게 축복 따위는 없었는데, 그 일이 있은 지 일 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2009년이 지나가는 것이 속이 후련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지긋지긋하고 힘들었던, 아마도 내 삶에서 최악의 해로 기억될 이 2009년이 드디어 지나가는 것이 기뻐서 말이다. 변화를 어찌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슬프지만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크리스마스 증후군에 동참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이 있으리란 믿음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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