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토론토에서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아쉽게도 그때 본 창 밖의 회색 톤이 기억나지 않는다.


2015년 6월 1일.

저녁 비행은 운치가 있다. 구름 위로 올라가 해가 지고 나면 주변이 온통 회색이 된다. 촬영한 흑백 사진들을 보정하다 보면 좋은 톤을 찾기 위해 한참을 노력하게 되는데, 저녁 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보이는 무섭도록 아름다운 (어둠, 구름, 그리고 구름을 비집고 올라온 지상의 빛이 만들어 내는) 회색의 명암은 어도비 사의 “쿨”한 개발자들이 만든 최신 소프트웨어라도 절대 만들어낼 수 없을거다.


2015년 6월 1일.

나는 놀이기구를 잘 못 탄다. 한국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정도가 내가 견디어낼 수 있는 한계다.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떨어뜨리는 미국의 롤러코스터나 하늘에 한참을 솟구쳤다가 중력에 맡겨 뚝 떨어뜨리는 종류의 놀이기구는 시도해본 적도, 앞으로 시도해볼 마음도 없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기체의 흔들림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이럴 때 (기체가 요동칠 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피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눈을 감는 것이다. 이 방법이 왜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의 가설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내 두려움의 원인이 떨어지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것과 몸이 느끼는 중력의 변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는 거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스스로 이해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 왔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오늘 발견한 방법이다. 눈앞에 있는 와인잔에 담긴 와인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요동치는 비행기로 인해 내 몸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생각보다 유리컵 안의 액체는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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