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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2. 23. 오후 11시 30분. 논산)
불침번을 서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그나마 두 번째 불침번(11시) 이라서 시간이 괜찮은 편이다.
A의 편지를 받았다. 한꺼번에 다섯 통이나. 아직 두 통만 읽었다. 오늘 전화를 시켜준다 했는데 못 했다. 분대장이 까먹은 것 같은데 상관없다. 다음에 하면 되니까. 편지를 읽어보니 정말 힘이 난다.
군기교육대에 가게 되었다. 밤에 전우가 가져온 동그랑땡 먹다가. 크. 훈련소에 있는 동안 그런 곳은 안 갈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일은 경계 훈련이 있는 날이다. 불침번 끝내고 빨리 자야겠다.
– 내 인생의 break –
지금까지 너무 쉼없이 달려왔다. 나태한 휴식이 아닌 전환기로서의 휴식, 준비되고 부지런한 2년의 break를 기쁘게 맞이하자!
(2006. 2. 23. 논산)
감기가 심해졌다. 몸이 피곤하니까 모든 것이 하기 싫다. 내일 경계교육때문에 밖에 10시간 있어야 한다는데 빨리 나아야 한다. 오늘 설겆이가 무척 힘들었다. 설겆이 때문에 식당에 가기가 두려울 정도다.
앞에서 우리 소대(4소대)장이 강의를 하고 있는데 무척 졸린다. 저놈은 인상, 표정, 말투가 다 살벌하다. 억센 전라도 사투리. 군에 있는 동안 지금까지의 내 삶을 생각하고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자. 제천에 있었던 어릴 적, 산수를 좋아했던 초등학생 시절, 김미숙 선생님, 뉴질랜드에서의 추억, 중학교, 수학 공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초 고탄력 스프링처럼. 그래 그렇게. 앞으로의 인생을 멋지게 헤쳐 나가는거야. 후회하지 않도록.
(2006. 2. 22. 생일. 논산)
생일이다. 앞으로 생일 하나만 더 지나면… 전역할 수 있다. 생일이라고 괜히 우울해하지 않으련다. 생각을 버리고 몸만 움직이자. 그러면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나의 침실 여행’을 생각해 보자. 주위의 사물·사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총검술 훈련을 시작했다. 총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총검술 자세를 하나하나 따라하는데 구분동작으로 멈춰있을 때마다 팔과 손목이 끊어지는 듯 했다. 오늘은 그래서 다들 피곤해한다. 다행히(정말 다행히) 오늘은 불침번이 없더라. 그리고 저녁먹고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다.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하하.
아까 분대장에게 오늘 전화 한 통 시켜달라고 얘기는 해 놨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못 했다) 까먹었으려나… 뭐 아무려면 어떠냐. 앞으로 계속 오게 될 생일이고, 또 앞으로 계속 볼 내 가족이고 여자친구니까. 오늘 하루 아무려면 어떠냐. 쓸데없는 우울함은 버리려 노력중이다. 아까 저녁 땐 사실 좀 우울했다. 생일에 170개 그릇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여기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손과 발의 살들이 점점 굳어지고 근육이 점점 단단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훈련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과거의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러리라 믿는다. 훈련병, 이병, 일병을 거치는 것도 분명 모두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내무실에 있는 책 한 권을 보았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그것을 읽어보려 한다. 아는 선배의 조언을 되새기고 있다. 군대에 적응하면서도 ‘나’의 본분과 본질을 잊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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