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대학생이었지만 고작 만 열일곱에 불과했던 꼬꼬마 신입생 시절,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 하면서 지겹도록 했던 생각이다 –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누구나 고민하는 뻔한 이야기. 아마도 이런 제목의 책들도 여러 권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다른 듯하고.)

사실 순수하게 이 질문의 답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답들이 있다. 내 존재는 하찮으며 우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 존재의 이유 따위는 없다는 우울한 대답부터 시작해서, 그와 반대로 나의 존재는 나 스스로에게는 우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오만한 대답까지. 이 중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도 적당히 타협하다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대답들과 나의 일상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일상은 대부분 사소한 일들로 구성되는데, 내가 왜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지, 어떤 음악이나 예술이 나를 울게 하는지, 이런 것들과 나의 존재의 이유를 연결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그것들은 하찮은 유기물의 일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내 마음이(또는 인간 사회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가.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끝에는 더 큰 무언가가 있을까. 단순히 내가 충분히 갖지 못 해서 남들의 것이 모두 허상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런 나의 못된 마음의 소산일 뿐이라면 정말 좋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부에서만 사용하는 도구들이 많기로 유명한 회사여서 그것들에 모두 익숙해 지려면 적어도 일 년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작업 환경부터 하는 일이 적용되는 분야까지 전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넘칠만큼 충족되고 있다.

전에는 나태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면 지금은 바쁜 일상에 치여 방향성을 잃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지만 그래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들과 나중에 할 일들을 잘 구분하면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박사과정 공부를 할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이 주어져 있다. 그만큼 건강을 관리하는 일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매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한다.

지금까지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외부에서 오는 생산적인 자극은 충분하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을 잘 설정하고, 중심을 잘 잡고 서두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내 육체와 정신을 잘 지켜야 한다.

My First Office

처음 해보는 것들은 대부분 힘들다. 2013년 딱 이맘때쯤 박사 졸업장을 받고 처음 기숙사가 아닌 곳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내 소유의 자동차를 갖게 됐고, 부동산업무/보험가입/은행대출/세금신고 같은 일들을 처음 해보고 어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게 됐다. 그래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큰 문제 없이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직장이 든든하게 있어준 덕분이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처음으로 정든 상사와 동료들에게 회사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올 일 없는 내 사무실을 뒤돌아 본다. 지난 몇 달간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으면서도 떠나는 발걸음이 이렇게 아쉬운 이유는 아마도 그 동안 이 회사가 나의 마음가짐에 큰 안정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해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설 수 있는 것도 지금까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것들 덕분이다.

바로 다음 주 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바쁜 삶을 살게 될테니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시간도 많지는 않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짧은 휴식 중에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오늘 하루 만큼은 마음 속에 잘 담아 두고 싶다. 송별 점심 식사를 함께 해주고 축복해준 동료들과 불 꺼진 내 사무실을 기억 속에 고이 넣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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