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부에서만 사용하는 도구들이 많기로 유명한 회사여서 그것들에 모두 익숙해 지려면 적어도 일 년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작업 환경부터 하는 일이 적용되는 분야까지 전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넘칠만큼 충족되고 있다.

전에는 나태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면 지금은 바쁜 일상에 치여 방향성을 잃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지만 그래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들과 나중에 할 일들을 잘 구분하면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박사과정 공부를 할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책임이 주어져 있다. 그만큼 건강을 관리하는 일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매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한다.

지금까지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외부에서 오는 생산적인 자극은 충분하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을 잘 설정하고, 중심을 잘 잡고 서두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내 육체와 정신을 잘 지켜야 한다.

My First Office

처음 해보는 것들은 대부분 힘들다. 2013년 딱 이맘때쯤 박사 졸업장을 받고 처음 기숙사가 아닌 곳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내 소유의 자동차를 갖게 됐고, 부동산업무/보험가입/은행대출/세금신고 같은 일들을 처음 해보고 어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게 됐다. 그래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큰 문제 없이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직장이 든든하게 있어준 덕분이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처음으로 정든 상사와 동료들에게 회사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올 일 없는 내 사무실을 뒤돌아 본다. 지난 몇 달간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으면서도 떠나는 발걸음이 이렇게 아쉬운 이유는 아마도 그 동안 이 회사가 나의 마음가짐에 큰 안정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해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설 수 있는 것도 지금까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것들 덕분이다.

바로 다음 주 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바쁜 삶을 살게 될테니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시간도 많지는 않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짧은 휴식 중에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오늘 하루 만큼은 마음 속에 잘 담아 두고 싶다. 송별 점심 식사를 함께 해주고 축복해준 동료들과 불 꺼진 내 사무실을 기억 속에 고이 넣어 둔다.

변화

12May18

오마에 겐이치라는 작가가 (“난문쾌답” 중에서) 말하기를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딱 3가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효과 없는 방법 중에서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 있다고.

직장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현재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집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이직은 위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일이다. 일하는 공간은 사는 공간 만큼 중요하니까. 원래는 입사 후 3년 정도 되면 옮길 계획이었는데 이제 5년이 다 되어가니 계획보다는 많이 늦어진 셈이다.

기대가 많이 된다. 운이 좋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팀에서 일하게 되었고, MIT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관심 있는 세미나를 들으러 일과 시간에 갔다올 수 있는 점도 좋다. 입사 첫 해에는 휴가가 많이 없을 것이라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한동안 마음 한켠에 삶이 정체된 느낌이 있었다. 다른 여가 활동이나 인간 관계에서 결핍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하는 일과 내가 관심있는 것들 간의 괴리에서 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새로운 직장이 문제를 전부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율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 초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는 보스턴을 떠나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처음 보스턴 생활을 시작했던 학교가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너무나 익숙한 장소, 가만히 있어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알아서 나를 찾아오는 최적의 배움의 장소, 한편으로는 이제 아는 친구들이 손에 꼽을 정도인 쓸쓸한 장소. 이 공간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까. 꽤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기에 당장은 내가 사는 집과 주변 환경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일수도 있겠다.

노스텔지아에 빠지지 않기를,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너무 느리지 않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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