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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마지막 글을 쓴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과학자로 여러가지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를 해 보았고 변변치 않은 성과도 있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에는 모든 인간들에게 (좋은 의미로든 안 좋은 의미로든)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3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지금 더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아직도 시간이 너무 무섭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도 알게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인 채로 마지막 숨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아직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중년”이라 불리는 나이까지는 조금 더 남았지만, 내가 일흔 살 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지금 나는 중년(中年; middle age)이다. 의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언제든 예고없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죽음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끔씩 그 실마리가 될 만한 단편들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그것이 진정 나에게 맞는 모습인지, 아니면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남들의 모습을 게으른 마음으로 부러워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는데 열심히 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확신 없이 헤매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끄럽지만 특히 아직 내 안에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보이기에 부끄럽다.

일단은 도움이 될 것 같은 습관들을 다시 시작하고 유지해 보자. 매일 운동 하기, 일기 쓰기, 자연과 더 가깝게 지내기, 주변의 존재들을 필요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기, 악기를 연주하기.

올 해는 변화로 가득한 해였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큰 변화라면 아마도 직장을 옮긴 일일 것이다. 하는 일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나의 생활 전반적으로 많은, 대부분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 변화였다. 옛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 느끼던 결핍의 많은 부분이 새 직장을 통해 채워졌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 양쪽 모두 전보다 좋아졌음을 느낀다.

직장을 옮긴 것을 포함해서 이번 해에는 처음으로 경험한 일들이 많았다. 그 중 일부는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들이었고, 그 외에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 일들도 많이 있었다. 그 일들이 준 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여전히 턱없이 미성숙하다는 생각. 둘 다 무서운 일들이다.

위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삶의 기억은 단기적으로 보면 연속적(continuous)이지만 길게 보면 이산적(discrete)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 전이나 하루 전, 또는 일 주일 전을 생각해 보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하나의 연속된 기억으로 떠올려 지는데,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확실히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휙휙 지나가는 시간을 잘 잡아 두고 기억이 널뛰기하지 않도록 매 순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은 이러한 삶의 책갈피들을 최대한 많이 남겨놓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직 이런 말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은 너무 빨리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쉬지않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직업은 대학생이었지만 고작 만 열일곱에 불과했던 꼬꼬마 신입생 시절,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 하면서 지겹도록 했던 생각이다 –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누구나 고민하는 뻔한 이야기. 아마도 이런 제목의 책들도 여러 권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다른 듯하고.)

사실 순수하게 이 질문의 답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답들이 있다. 내 존재는 하찮으며 우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 존재의 이유 따위는 없다는 우울한 대답부터 시작해서, 그와 반대로 나의 존재는 나 스스로에게는 우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오만한 대답까지. 이 중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도 적당히 타협하다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대답들과 나의 일상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일상은 대부분 사소한 일들로 구성되는데, 내가 왜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떤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지, 어떤 음악이나 예술이 나를 울게 하는지, 이런 것들과 나의 존재의 이유를 연결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그것들은 하찮은 유기물의 일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내 마음이(또는 인간 사회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가.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끝에는 더 큰 무언가가 있을까. 단순히 내가 충분히 갖지 못 해서 남들의 것이 모두 허상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런 나의 못된 마음의 소산일 뿐이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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