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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2. 오후 7시 23분. KTA)
(=> 참고로 KTA = KATUSA Training Academy. 의정부에 있는 Camp Jackson 이란 부대 안에 있다)
김형중의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카이스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의 설레임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그 때와 군대 생활을 시작하는 지금의 기분이 왜 이리 다른 걸까. 아니 다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즐겨보자.
(2006. 3. 24. 오전 9시 22분. 기차 안)
기차에 올라탔다. 39일 만에. 평택역에서 논산역으로 오는 기차를 타고 육훈에 온지 5주만에 연무대역에서 군용기차를 타고 화랑대역으로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기차 안에서 먹을 군용 식략을 배급하고 있다.
오늘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도 없다. 그토록 기다리던 3월 24일, 카투사로서의 훈련을 시작하는 날, ‘내 손으로’ 바느질해서 엉성하게 붙어있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기차에 올라타니 밀려오는 자유의 감동. 하하.
오늘의 점심은 ‘군용식량 전투용 I형’ 이었다. 정말 맛 없다. 전쟁이 안 나야 하는 이유는 정말 수만가지이다.
(오후 1시 22분) 방금 수원역을 지나쳐 갔다.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여기서 내려서 10번 버스를 타면 용인터미널로 간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사회. 분명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 걸까.
일장춘몽. 정말 하룻밤의 꿈 같다. 5주간의 육훈에서의 생활이 분명 머리속의 기억으로는 남아있지만 마음은 다시 두 달 전의 내가 되어 있다. 나는 예전과 다를 것이 없다. 매달 몇 번씩 했듯이 지금도 대전역을 지나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왔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군복을 입고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있다는 것뿐.
KTA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306 보충대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었다. 그냥 루머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맞는 것 같다.(=> 다행히 우리 기수는 KTA로 바로 들어갔다. 306을 거친 기수도 있다는데 카투사라고 일을 엄청 부려먹어서 힘들지만 거기 들어온 훈련병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하하)
서울이다. 63빌딩, 쌍둥이 빌딩, 한강, 남산타워, 그리고 151번 버스를 보았다. 용산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지나치고 있다. 용산역에 여고생들이 한 다발 모여 있는데 우리가 손을 흔들었더니 예쁘장하게 생긴 한 명이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그러자 다들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이것이 군대다. 하하하.
가정집에서 중학생이 가방을 메고 나오는 것이 보인다. 중학교 때가 생각난다. 왕십리역이다. 한양대생들은 자기네 학교 봤다고 좋아하고 있다.
청량리역이다. A와 강원도(경포대와 춘천) 여행갔던 때가 생각난다. 신이문을 지났다.
성북역에서 대학생들이 MT를 가고 있다. 광운대생들일 것 같단다. 06학번…
점점 화랑대로 가고 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때다. 다시 나의 현실로, 군인으로 복귀해야만 한다. 다시 보는 그 날까지 사회여 안녕!
(2006. 3. 23. 오전 11시 40분. 논산)
어제의 야간행군을 마지막으로 5주간의 훈련이 모두 끝났다. 이제 짐을 챙기고 청소하고 떠나는 일만 남았다.
오늘 훈련소에서 김성중 상병(분대장)인가가 만든 동영상을 보았다. 훈련 중에 사진들을 가지고 편집하고 음악 넣은 것인데 다 보고 나니 괜히 뭉클해진다. 처음 입소하는 그 날부터 경계, 화생방, 숙영&각개, 종합각개, 사격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후 5시 11분) 방금 수료식을 마치고 왔다. 처음 입소대대에 들어갔던 날 누군가가 관등성명으로 “이병 XXX”라고 하자 분대장이 니가 이병이냐며 면박을 주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오늘부터는 나도 “133번 훈련병 윤태동”이 아닌 “이병 윤태동”이 된 것이다. 한낱 작대기 하나짜리 이등병을 달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앞으로 4달 넘게 이등병으로의 삶을 살게 되겠지…
나는 내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주 간의 훈련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모든 훈련을 단 한 차례의 열외 없이 모두 수행해 내었고 제식과 사격에서 우수자로 전화조치도 얻어내었다. 훈련소 생활을 잘 견디어 내었듯 앞으로 군인으로의 삶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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